오늘의묵상

긍정의말로 승리하자!

백미란목사 2013. 1. 25. 06:17

 

긍정의말로 승리하자!

야고보서 3장 1-12절

우리는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으며, 중국 고사(古史)에는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포르투칼에는 "냉수 한 모금보다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말이 있으며 영국에는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말에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는 두 말없이 완전한 사람이요 사람의 혀는 신체에 비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마치 큰 대양 선박을 움직이는 키와 같이 인생행로를 결정할 만큼 소중한 지체입니다.

작은 성냥불이 모닥불을 일구고 마침내 대형화제를 일으키듯이 만일 혀가 잘못 사용되어지면 지옥 불과 같은 불이 인생의 수레바퀴를 불사를 것입니다.

천하만상 모든 사물들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가 있지만 인간의 혀를 길들여 주는 조련사는 없습니다.

말은 크게 나누면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죽이는 모습으로 혹은 살이는 모습입니다.

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말은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용기를 꺽어 버립니다. 삶의 소망을 없애버립니다.

신앙 생활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열심을 떨어뜨립니다. 소극적이 되게 합니다. 비판적이 되게 합니다. 혀로 동료 신자의 인격을 훼손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으며 장황하게 열거합니다. 의로운 분노라는 미명하에 동료 신자들을 향해 분노 발산합니다.

주일날 혀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입술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동료를 비난합니다. "할 수 없다,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말. 불평, 험담, 원망, 비밀누설 같은 야비한 말을 합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고 비현실적이고 황당무계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습니다.

대안이 없다면 차라리 비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패려한 자의 말과 말장이의 말(잠16:28)로 자기 의지만 고집하는 말버릇과 가시가 있는 말. 남을 흉보는 말(잠26:22), 저주하는 말이나 교만한 말 그리고 거짓말(시59:12), 과격한 말(잠15:1b), 악하고 더러운 말(엡4:29-31), 형제를 비방하는 말(약4:11) 이런 말을 뿌리면 그 말에 의해 나타나는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죽는 열매가 열립니다.

살리는긍정의 말이 있습니다.

"감사의 말, 세워 주는 말, 위로의 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인 말을 합니다. 믿음이 담긴 말을 합니다. 꿈이 담겨있습니다. 섬김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용기를 주는 말을 합니다. 향기가 있습니다. 향기 나는 언어는 무례하고 거친 말. 불평과 원망의 말, 욕설과 누추한 말이 아닙니다.(엡4:29).

향기로운 말, 그것은 듣는 이를 즐겁게 하며, 매력이 있는 맛난 말입니다. 감사하는 말(엡5:4)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말(엡4:25). 선한 말(엡4:29) .칭찬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선행을 격려하는 말, 상대방을 세우는 말이 신앙인의 언어입니다.

유순한 말(잠15:1a; 25:15), 은혜로운 말(골4:6)로 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칭찬하는 말(사50:4, 창50:21)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 말의 열매는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살리는 열매가 달리게 됩니다.

말에는 창조성이 있습니다. 왜곡된 말이 던져지면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고, 온유한 말이 던져지면 온유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폴란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소년은 음악학교에 입학했으나 교수로부터 매우 비관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네 손가락은 너무 짧고 굵다. 유연성도 부족하다. 다른 악기를 택하도록 하라" 소년은 다른 악기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소년은 만찬회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신사가 소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너는 피아노에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라" 소년은 중년신사의 격려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 노신사의 이름은 안톤 루빈스타인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날부터 하루에 일곱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피아노의 천재'로 불리는 잔 파데레우스키입니다.

실패한 배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배드로는 일평생이 변하였고 바울은 예수님을 통하여 부름을 받고 생이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잠언 18:21절은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4:29)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며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에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으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말의 위력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까?

1) 먼저 혀는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줍니다(4).

오는 성경 5절에 보면 그 큰 배를 키 하나가 움직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배일지라도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그 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물론 말에 주술적인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심어지면 사람은 그 말을 아무리 무시하려해도 그 말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부정적인 언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부정적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수치심을 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죄책감을 배우고 관대함 속에서 자란 아이는 인내를 배우고, 격려의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세상이지만 어떤 안경을 쓰냐에 따라 세상이 파란게도 노랗게도 보이는 것처럼 어떤 말이 마음에 떨어지냐에 따라 그 인생의 방향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소한 한 마디가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 극단적인 예사 유고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유고의 작은 시골마을 천주교 성당에서 신부가 미사를 집행할 때에 수종드는 아이가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신부는 그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다시는 제단에 나타나지 말아라."하며 꾸짖었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커서 대통령이 된 티토라고 합니다.

신부가 다시 미사를 집행하였는데 다른 수종드는 아이가 또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엎질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커서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바로 유명한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사실까>(THE LIFE OF CHRIST)를 쓴 풀턴 쉰 신부라고 합니다.

2) 혀는 내 소유를 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5-6).

작은 불씨이지만 그 불씨가 많은 나무를 태우게 되는 것처럼 말은 순식간에 우리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쌓은 권력과 명성, 재물을 하루 아침에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한 마디 잘못하여 정치적 권세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치밖에 안되는 바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헛소리 한번 잘 못했다가 물러난 장관,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 물러난 권력자들을 우리는 종종 보며 살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하면 천냥 빚도 갚지만 말한 마디 잘못하면 이혼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엄청난 경제적인 손해를 보기도 하고 고귀한 직분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납깁니다. 끔직한 살인 기계 역할을 했던 지존파 김기환씨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법정 최후 진술에서 털어 놓은 것은 17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는 것입니다.

1977년 창 밖에 눈이 허옇게 덮여 있는 한 겨울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는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생님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욕을 듣고 따귀를 맞고 벌을 서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형장으로 가기 위한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재판장님, 저는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모두 죽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사망의 씨로 박혀 한 시골 아이를 처절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말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말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고 결정해 줍니다(3).

재갈은 조그마한 것이지만 말의 행동을 결정해 주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말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지만 말함으로 자신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말에 따라 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잠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인간의 행동은 그의 언어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은 말의 재갈처럼 배의 키처럼 산불의 불씨처럼 힘이 있고 파괴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데 우리가 이 말을 어떻게 다스리고 잘 활용하여 성숙한 신앙인답게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은 그 답을 몇가지 주고 있습니다.

2. 해결책

1)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이 바뀌어지면 말도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장 34-35절에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시길,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말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언어생활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신앙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언어생활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요, 인격의 표현이며,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마음이 바뀌면 말도 바뀌는 것입니다.

둘째, 정확한 말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성경적으로 거짓말은 큰 죄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는 거짓말 하다가 죽었습니다. 정확한 말, 진실된 말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옭기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말이 변질되게 되고 부풀어집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남의 말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지 못한 말은 듣고 끝내버려야 합니다. 말이 돌아다니다가 내게 와서 끝나 버리는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말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야! 자기만 알아!” 자기만 알라고 말했는데 말이 돌고 돌아 모든 사람이 알게 됩니다.

나쁜 말, 비난하는 말, 욕하는 말 말을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언어는 "죄송합니다"는 말과 "감사합니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이 두 단어에다 인색합니다만 특히 죄송하다는 말할 줄 모릅니다.

어떤 사람 보면 사과하러 갔다가 더 크게 싸우고 옵니다. 깨끗하게 죄송하다고만 말하면 될텐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봅니다.

우리 나라 정치를 보십시오. 잘못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엄청난 일들이 터져 나오는데 그것이 내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항상 불만에 쌓여 있습니다.

어떤 자리, 어떤 상황이던 잘못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그 상황 그 자리 그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책임지는 그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러분,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말하십시오. 이것저것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깨끗하게 잘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 성숙한 언어생활이 있습니다.

넷째로 좋은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찬양의 말, 남을 향해서는 축복과 칭찬의 말을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남을 축복하고 칭찬한 말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 말들이 가정은 복되고 만들고 교회를 은혜롭게 만듭니다. 사회를 윤택하게 만듭니다.

마태복음 10장 보면 예수님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할 때 어디든지 가거든 그 집에 평안을 빌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집이 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빈 복이 거기 임할 것이요,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이 복 받기 위해서도 남에게 복을 많이 빌어야 합니다. 그것도 복받지 못할만한 사람들에 복을 만이 빌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복이 다 내게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래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남에게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반대도 알아야 합니다. 저주를 했는데 그가 저주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보다 아름다운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도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여 발이야 라고 했습니다. 입술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형제에게 축복과 위로의 말을 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41편에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겠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나님 지켜달라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입술을 지켜 달라고 진실되게 기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언어생활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개인은 물론이요 교회의 모든 문제가 언어생활에서 생겨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온전한 교회의 모습도 성숙한 언어생활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언어가 성숙해야겠습니다.

언어생활이 거듭나 복된 언어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경건생활에 경건한 언어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정확한 말을 하고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혀를 길들여 무의식 중에서라도 찬송과 축복과 감사를 말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주신 이 고귀한 입술로 남은 생애 온전한 언어생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말에 허물이 많은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의 허물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진실로 이제 찬양의 말, 축복의 말 위로의 말 복음을 전하는 말만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 주시고 우리의 말들을 성령으로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각자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되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 교회, 우리 가정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가 더욱 온전한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총 내려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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