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행5:42)
적용 : 말씀대로 순종한 사도들은 다시 잡혀서 공회 앞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이려는 세력 앞에서도 그들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믿음에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결코 그들은 사도들을 막을 수 없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받는 능욕을 기뻐하였습니다. 나는 오늘도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늘 복음을 전하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모습이 되기 원합니다.
기도 : 전도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주께서 인도하셔서 승리케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도 방법]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주님의 권위(權威)로 굴복시켜라
주님은 진리를 증거하는 데에 망설임과 거칠 것이 없었고 강하게 담대히 외쳤다(마23:29,33).
예수님은 진실을 외쳤으며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셨다.
베드로도(행5:19) 스테반도(행7:51-53) 죽음을 무릅쓰고 담대하게 외쳤으며 , 바울도 주님의 권위로 사단의 진을 부수고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의 집을 지었으며 에베소에서의 역사(행19:17-20)를 나타냈다.
주님의 권위로 가이사 앞에서도 담대했다.
첫째로 권위있는 전도를 위해서는 순수한 전도를 해야 한다.
바울과 베드로는 성령님에 감동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도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이나 야망, 그리고 자신들의 권위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고 오직 순수하게 영혼이 불쌍하기 때문에 전도하였다.
두 번째로 권위 있는 전도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전도해야 한다.
이는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보아 될 부분이다.
어떤 성도들은 시간 부족, 건강이 않 좋아서, 물질의 부족으로 등 많은 이유로 전도를 게을리 한다.
순수한 전도, 생명을 내놓은 전도는 구원 받은 모든 성도가 가야할 길이다.
세 번째로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는 전도자여야 한다.
개인전도든, 대중전도든 너무 지나치게 예화나 역사적인 이야기 혹은 세상적인 이야기를 나열하면 말씀의 권위를 잃기 쉽다.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로 하나님에 의해서 쓰여진 말씀이므로 성경이 일하게 해야 한다.
전도자의 말이 아무리 논리정연하다고 하여도 말씀의 권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네 번째로 전도는 자기 일이 아니오 하나님의 일임을 분명히 알고 행하므로 주님의 권위를 나타낼 수 있다.
전도자는 진정으로 자기를 비워야 하며 전도는 전도자가 하지만 전도자의 일은 아닌 것이다.
다섯 번째로 주님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진지한 의뢰(依賴)"가 있어야 한다(시42:1).
여섯 번째로 주님의 권위를 위해서는 방법을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전도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그 방법들을 지나치게 의지할 때에 오히려 영력이 소멸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켰다고 해서 꼭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위 앞에 굴복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에 녹아지는 것이다.
구원은 이론적인 굴복이 아니요 인격적인 굴복이며, 육신적인 투항(投降)이 아니요 영적인 투항이니 이 신령한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권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끌려 다니지 말라
전도의 본질은 선포(宣布)하는 것이요, 전달하는 것이요, 깨우치는 것이며 경고(警告)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말이 안통하면 몇 마디 경고하고 일어날지언정 그들의 말장난이나 악한 행동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물론 잘 이해하지 못하여도 진지한 구도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전도자가 끌려 다니는 이유를 몇 가지 보면
첫 번째, 심리적 이유가 있다. 전도자의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있어 끌려 다니는 경우를 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지식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다고 하여 이단들을 멀리하지 않고 변론하다가 오히려 혼돈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는 전도에 대한 잘 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끝까지 싸워서 죄인의 항복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변론으로 상대를 이겼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는 전도(傳道)전략(戰略)의 부재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성경수준, 지식수준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또는 상대방이 시간이 여우가 있는지 아니면 바쁜 상태인지 살펴야 하며, 진지한 태도가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전도자가 충분한 지식과 지혜와 전략을 가지고 담대함과 자신감으로 무장 하였으면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의지한다면 더할 것이 없는 충분한 준비된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네 번째는 끌려 다니는 것의 전략적인 부분도 있다.
특별한 경우에는 일부러 상대의 질문에 답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진지한 반응을 보이며 칭찬 해주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전도는 현장(現場)에서 배우는 것이지 이론으로 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전도를 배우려거든 지금이라도 구도자들 앞으로 달려나가라.
"너희는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마10:19)
은혜로 녹여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 이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6)
구원은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구도자가 십자가위 복음은 깨달았으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의 구원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든지 구도자가 자신이 은혜를 모르는 죄인이라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복음을 듣고 복음을 이해하면서도 영적인 변화가 없는 이유가 복음 속에 있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것에 있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왜 왔을까?
첫째로, 그들은 정말 창조주를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면 그렇지 않다면 그 하나님의 은혜를 알도록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하심을 잘 설파하여 그 하나님이 살아 계심으로 인한 감동을 받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 그들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이들은 말로는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관념적일 뿐이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떠한 죄인이며 얼마나 비참한 줄 실제로 모르고 있다.
전도에 있어서 구도자들에게 죄인됨의 본질을 얼마큼 잘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도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이다.
세 번째로, 그들은 지옥의 실체를 확실하게 깨닫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지옥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없고 구원도 필요 없다.
우리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성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심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 중심에 지옥에 대한 공포가 없음으로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죄인들을 지식이 아닌 은혜로, 말이 아닌 은혜로 행동으로 녹여야 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들이 형통하고 건강과 물질의 행복을 누리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 물론 은혜이다.
그러나 구원 속에 감추어진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은혜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전도자의 가장 주요한 무기이다.
구도자를 감동시켜라
구도자를 감동시키는 일은 몇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전도자의 행위를 통한 감동이다.
구원을 받은 많은 자들이 자기에게 전도한 자들의 행한 일들로 인하여 마음에 감동을 받고 마음의 문을 열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무의식 중이라도 전도자는 구도자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유치한 질문 같아도 고집이세고 강팍한 것 같아도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하며 구박하거나 나무라지 말고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전도자가 구도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메시지의 내용이다.
전도자는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게 선경을 설명하거나 구도자를 설득시키려고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많은 부분을 전하면서 구도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받게 해야 한다.
세 번째, 전도자의 행위가 감동을 주는 경우는 구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그들을 구원을 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감동이 곧 구원은 아니기 때문에 구도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에 만 너무 신경쓰면 오히려 구원을 그르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칫 분명하고 강력한 경고나 책망을 해야 할 부분에 하지 못함으로 전도를 그르칠 수 수도 있다.
전도는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강하게 책망하고,때로는 부드럽게 이해시키고, 때로는 울면서 증거하고, 대로는 집요하게 약점을 공격하고 때로는 무식한 사람이 배우듯이 상대의 이야기를 칭찬하면서 들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말싸움에서 지지 말라
전도는 일면 "말싸움"이라고 표현 할 수 도 있다. 주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을 말로서 물리치셨다.
즉 전도자가 말싸움에서 실패하고 전도에서 성공 할 수 없다.
전도는 말로 죄인을 굴복시키는 작업이다. 그리고 말은 그 사람의 사상을 나타낸다.
즉 사상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지만 결국은 말로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상대로 하여금 많은 말을 하게 하여 그의 사상을 밖으로 들어나게 해야 한다.
상대방의 사상이 많이 들어나냐 약점도 들어나고 전도위 방향도 보이게 된다.
말은 그 사람의 경험을 나타낸다.
그리고 말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신앙관을 나타낸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말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내고 있으니 전도자는 상대방의 말속에서 이러한 모든 것을 포착하여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말싸움에 있어서 주의사항을 몇 가지 들어본다.
첫째로, 말싸움에 치우친 나머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여 일을 망치는 수가 있다.
전도자는 결코 상대방에게 이기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하기 위해서임으로 감정조절을 잘 해야 한다.
둘째로, 전도가 말싸움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될 필요가 있다.
전도의 말싸움은 상대를 꺽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로, 말싸움의 내용이 구원을 받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아니면 말싸움의 주제로 삼을 필요가 없다.
놀라게 하라
전도자들도 구도자들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전하는 메세지는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충분하다.
구원에 관한 진리는 다 놀라운 것이다.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가는 구원이 선물이라는 것이 놀랄만하지 않는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도 그렇다.
대부분 자신이 죄인이라 하면서도 지옥에 갈 만큼의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도..하루살이같은 인생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신분도.. 십자가의 사역도....
전도자가 영혼들을 놀라게 하는 전도를 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첫째로, 전도자 자신이 복음에 놀라워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의 놀라움과 확신으로 전할 때에 훨씬 더 힘있게 전해진다.
두 번째로, 놀라운 복음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많은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주님의 놀라운 복음을 깊이 넓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전도자는 구도자를 놀래기 위해서 필요한 언어와 표현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지옥의 끔직함이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심을 풀어 줘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많은 표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다.
병을 고치시거나 물위를 걸으시거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 등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표적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풀어
주기 위함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은 사단으로부터 왔다.
전도자는 구도자의 마음 속에 있는 의심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풀어 줄 수 있느냐가 구언의 주요한 열쇠가 된다.
의심을 푸는데 있어서 몇 가지의 조언(助言)
첫째, 전도자에 대한 의심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에 많은 거짓 일꾼들이 있고 성경도 이 일을 경고하기 대문에 그들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구도자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교제 중에도 자랑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전도자가 속한 교회에 대한 의심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혜로운 질문을 사용하여 그 의심들을 풀어 주어야 한다.
세 번째, 말씀 자체에 대한 의심이다.
성경을 그저 도덕책이나 평범한 책으로 여기는 경우에 이러한 자들에게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서 접근해야 한다.
네 번째,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다.예수님에 대한 여러 의심을 풀어 주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불신하고 있는 경우에는 복음을 전하여 듣지 않는다.
그 외에도 천국, 지옥, 창조 등에 대하여도 의심이 있는 경우에 어떻게 그 의심을 풀어 주는가를 기도하고 노력을 하여야 한다.
논리로 이해시켜라
전도에 있어서 논리로 이해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해는 구원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오는 데는 이해가 필요하다.
전도는 깨우치는 일인 만큼 듣는 자들의 수준이나 생각, 고정관념(교파 문제, 지성이면 감천 등) 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이해시켜 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자기 생각을 지키려는 보수심리가 있다.
자기 생각 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심리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음으로 전도자는 많은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구도자가 아무리 완악(頑惡)하여도 그들을 미워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되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오직 전략상 후퇴하여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
늘 애정과 겸손함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시켜야 하며 잘 못 된 것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들의 자존심을 살려 주면서 예절있게 이해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게 하라
너무 주입식으로 하려 하지 말고 구도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전도를 해야 한다.
구도자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면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소용이 없음으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야 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하신 전도에서 많은 모본(模本)을 볼 수 있다(요8;9, 마16:3,막10:17).
너무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전도하지 않고 전도자가 구도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였다면 일단 전도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어린이전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믿는 성도의 자녀들은 처음부터 질문도 하지 못하고 믿음을 강요하다시피 되어 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말할 여유를 주고 질문을 하고 생각하도록 하자.
사단도 인간에게 생각이라는 무기로 도전한다.
하나님을 반역하려는 생각, 죄를 지으려는 생각, 말씀을 반박하고 따르지 않으려는 생각 등이 사단이 사용하는 무기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선한 생각, 긍정적인 생각, 믿으려는 생각을 하게 하여 영혼을 건져야 할 것이다.
상대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은 전도자도 생각해 가며 여유를 갖게 되고, 이에 따라 상대의 상태에 맞는 전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전도 ! 할수있다 ! 하면된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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