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실제적인 방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의 [좋은 소식]을 전파 하시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이 전도이다.
이 전도는 많은 사람이 이루어야 할 사명인 동시에 기독교인의 행동적 표시이다.
특히 교회 직분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전도하라고 부르심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닌 분들이다.
"유대사람들은 기적(표적)을 구하고 헬라사람들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1:22-23)는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본장에서는 전도의 실제적인 방향을 제시해 보고져 한다.
1. 전도의 필요성
열심있는 전도사님 한분이 목사님에게 '예수님도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셨듯이 열매없는 일은 몇번이고 거듭하여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를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목사님, 저는 다만 두번밖에는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때를 얻는때와 때를 못얻는 때 뿐입니다.'라고 이것은 아주 귀한 일이다.
사도바울도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전도하라'(딤후4:2)고 명하고 있다.
전도는 어려움없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도의 길은 결코 평탄한 아스팔트 길의 연속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이 계속되는 비포장도로의 길과도 같다.
그렇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 가면서까지 이 어려운 전도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 물음은 전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의 행동에 대한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전도를 해야 하느냐?란 물음에 대하여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hn)은 '우리가 부닥치는 여러가지 난관(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의 정신 등이 절대로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굳게 믿을 것은 우리가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했다.
링컨(Lincohn)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한다(요일4:8). 사랑이신 하나님은 좋은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려고 하신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뜻은 당신(하나님)의 독생자(예수님)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일과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영광스러운 삶의 가능성이 전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전도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둘재,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선교사로써 도이취전도에 크게 공헌하여 [도이취의 사도]로 불리우는 보니페이스(Boniface 672-754)가 73세 되는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더러 이제는 연세도 많으시니 건강을 돌보시며 쉬라고 하자, 그는 '복음 듣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복음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사명이다'라고 했다.
비록 고령의 몸이지만 죽기 전까지 복음을 전한 모습을 상기할때 연령이 문제가 아니라 전도는 일평생하는 일이다.
사도바울도 '내가 복음을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잇을 것이로다'(고전9:16)고 했다.
마태28:18-20에 '예수게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사역을 통하여 전도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
또한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전도의 사명을 부여해 주셨다.
서울에 [아론]이라 부르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예수께서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으니 나는 앞으로 하루에 한번씩 밖에 나아가 전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어느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가 그치면 내가 전도해야지 그러나 하루 종일 비는 계속 내렸다.' 잠잘시간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비는 여전히 내렸다.
'할 수 없구나,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지'하고 [아론]은 그냥 잠자리에 누웠다. 그때 [아론]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책망소리가 들려왔다.
'아론아! 너는 내 명령을 잊었구나, 나는 너에게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전도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쓰고 길거리로 나아갔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다시 전철역으로 달려 갔더니 거기에는 전철을 탈 손님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 [아론]은 '예수를 믿으라'고 아무리 외쳐 보았지만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론]은 갑자기 쓰고 있던 우산을 접어서 땅에다 꽂고서는 쓰고있던 모자를 벗어 우산에 씌웠다.
그리고 나서는 '이놈아! 어찌하여 예수를 믿지않느냐?'고 하면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은 이 우수운 광경을 보기 위해서 우르르 모여 들었다.
그때부터 [아론]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외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하나, 둘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날밤에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 참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이 시간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하여 전도하라고 명령하신다.
성경 눅15:3-7을 보면 '목자는 아흔아홉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마리 양을 귀하게 보신다'는 비유가 있다.
이 말씀은 전도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나타낸 말씀이다.
셋째, 모든 사람의 바람(요구)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강한 욕망과 보다 행복하고 보람되게 살기를 누구나 원한다.
그 행복을 찾고자 하는 주체가 인간이기에 자신을 알기까지는 인간은 진정 행복해 질 수 없다.
인간은 무한한 가치와 진리를 알때 비로서 당신이 찾던 행복은 발견되어진다.
바로 이런 비밀한 진리를 깨닫고 풍성한 생활과 영생의 길을 걸으며 복된 소망의 삶을 살게 하는 것,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행위가 신앙인 것이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인생의 길잡이를 원하고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들은 죄에서의 구원을 절ㅅ히 요구한다.
반복되는 매일의 생활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은 어떤 형태의 새로운 메시지를 원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시어 행복된 생활을 살도록 지금 행복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것이니라'(마태7:7-8, 눅11:9-10, 요14:13)
모든 삶의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에 있기에 저희 교회는 여러분을 환영하며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이 찾아 주시면 언제든지 환영하며 복된길을 안내해 드릴 것이다.
지체말고 지금 바로 찾아와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인의 증인되기 바란다.
2. 전도와 교회성장의 방향
전도자 빌리그래함은 '전도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자멸한다'고 하였으니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주께로 인도하여 교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전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막연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때가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다 명확한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도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복음의 전파이며, 믿지 않는 자를 구원시킴과 교회의 설립, 그리고 최고의 목표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도의 과제를 놓고 우리는 어떻게 해 나갈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고져 한다.
1) 예수님의 전도방법
예수님의 전도방법을 모든 시대의 전도를 위한 종합 방법으로 받아서 목회자가 이 방법대로 평신도를 양육하여 생산하는 성도, 새끼낳는 양을 육성해야 하는데, 목회자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보다 전도를 양성하는 전도자가 되어 성도들이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를 훈련시켜야 한다.
눅19:10 이하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은 내가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이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과 더불어 전도의 업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특색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전도의 특성은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다.
전도의 대상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예수님의 전도의 특색이다.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마리아의 수가성에서 여인을 만났던 사건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전도의 특징을 잘 알수 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보내노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고 말씀하셨다.
전도는 먼저 어디든지 찾아가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여기에 잘 제시되어 있다.
또한 전도는 막10:45에 '인자의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는 말씀처럼 섬기려는 자세로 전도에 임해야 한다.
둘째로, 예수님의 전도는 구원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숫자적으로 10원에서 1원을 빼면 9원이라는 것이 성립되기는 하지만 여기서 [구원]이란 하나님편에서 보아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요 사람편에서 보아 배반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보아 양자를 조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아버지의 품안에 다시 있게 하도록 인도하여 주는 하나님과 인간의 새로운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구원 그 자체이다.
이러한 구원은 죽은 영혼의 구원이었으며, 여기에 병든 몸과 영혼의 구원이 병행되어졌다.
영혼의 구원이 없이는 인간이 삶의 궁극적 가치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와 '인자의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는 말씀을 비교하여 읽어 보더라도 예수님의 전도는 영혼과 몸과 마음을 통하여 전적으로 기쁨과 평화를 주는 전인격적인 구원임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예수님의 전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요5:23, 딤전1:17을 보면 보다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모든 행동과 전도, 이적 등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행해진 것이다.
즉 예수님의 사역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하늘에서 온것은 예수님 자신의 뜻을 행하려고 온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전혀 자기의 의지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좌우명에 의해 일관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도활동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전파라는 하나님의 의지를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2) 전도와 교회의 관계
전도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함으로 구원의 체험을 가져다 주는 것이요, 교회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인데 '에크'와 '칼레오'란 단어가 합성된 것으로 에크는 '밖으로' 칼레오는 '불러낸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불려나온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교회의 성장인 것이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관계가 기독교의 중심적 주제이다.
그리스도의 관심으로부터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의 복음을 토대로하여 기독교의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로 교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으로 하여 뭉쳐진 곳이며,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처럼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와 가지인 인간의 관계로서 교회를 생각할 수 있다. 이와같이 생각할때 전도란 가지에서 보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된다.
맥가브란(D.A.Mc Gavran)교수에 의하면, 전도의 목표는 '제자를 삼는 일'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의 대명령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라고 보고있다.
따라서 그는 전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인 동시에 이러한 '예수의 제자를 삼는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대치시킬 수 없는 목적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즉, 전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당위적으로 교회의 성장이 크게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는 것이 전도와 교회의 관계를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할 것이다.
둘째, 교회 성장의 구조적 관계이다.
에드워드머피(Edward Murphy)는 '전도의 목표란 교인의 배가와 새 교회의 배가 운동에 있다'고 주장하고, 단지 말씀의 씨를 뿌리는 일은 복음전도운동이 초보단계를 지나는데 그친다고 하였다.
예를들어 보면 농부가 계속하여 씨만 뿌리고 추수(수확)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농부는 결코 현명한 농부가 아니다.
이와같이 교회에 있어서도 씨를 뿌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씨뿌리는 것으로 끝나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아니라고 본다.
오늘의 교회가 성장이라고 하는 물줄기의 고삐를 잡아 어느 방향으로 틀어야 하며 또한 성장과 성숙시키는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전도는 반드시 새로운 성도를 교회로 인도해 오게 된다.
이러한 전도와 교회성장의 관계에서 반드시 숫적인 개념이 아니고 구조적인 성숙된 깊이를 지니고 영적인 고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만약 전도가 단지 복음의 선포에 있었다고 한다면 교회에 있어서 결신자의 사후관리가 필요없겠지만 전도의 목적이 '제자를 삼는일'이라고 한다면 효과적인 사후관리 대책이 또한 선교 정책에서 주요한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오늘의 교회에 있어서 지금까지 양적인 성장을 하였지만 내적으로 볼때 결신자의 사후관리에 미숙한 점도 없지 않았다. 또한 국내에서의 기독교의 놀랄만한 성장은 세계 기독교계에서 주요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다.
이때 오늘의 교회가 보다 정진해야 할 전도의 노력은 전도가 '제자를 삼는일'이라는 견지에서 안디옥 교회처럼 세계선교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말처럼, 오늘의 교회가 지금까지 이루어 온 성장의 혜택을 밖으로 내 보낼 시기가 되었다.
세계 선교로 보다 많은 시각을 돌리고, 새로운 세계 선교의 계획과 준비에 만전을 기하여 그 발판을 모색하여야 한다.
3) 한국교회의 선교정책 수립
선교 2세기를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선교 정책 수립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첫째로, 선교는 하나님의 뜻으로써 실행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선교의 전과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성공적으로 선교활동을 이끌어 갈 수 없다.
선교 전략의 모든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거절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이루어져야지 사람의 지나친 사고적 판단으로 임하여도 안되며, 하나님의 뜻으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로, 선교는 구원을 전해주는 운동으로서만 가치를 찾아야 한다.
기독교의 모든 신학적 기초는 '기쁜 소식'에 있다.
따라서 선교는 이 복되고 기쁜소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과정인 것이다.
'기쁜소식'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건과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에 있듯이 선교는 결코 이러한 복음의 내용을 벗어나는 것을 이야기 하여서는 안된다.
선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선교가 결코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기독교의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선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세상 사회의 이야기를 언급해서도 안된다.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고전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 말했듯이, 선교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맡은 사람은 그 일이 불가피한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영혼의 구원을 중심으로 하였고, 영혼의 구원은 오로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고전 3:7에 '그런즉 심는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 하셨듯이, 오로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섬기는자로서 믿지 않는 자의 인격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참고 사랑으로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넷째로 선교를 위하여 교회중심의 선교활동이 감화 되어야 한다.
지금가지의 선교가 개교회 또는 선교회를 통하여 이중적인 구조를 가졌다.
물론 선교회 중심의 선교가 큰 역할을 하였지만 이제 안전궤도에 들어선 오늘의 교회는 세계로 눈을 돌릴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교회에서도 독자적인 선교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선교예산을 확보하고 파견할 전도자의 자질향상을 위하여 준비를 하였다.
3. 효과적인 전도방법
전도라는 말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내리고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의 한 일원이 되도록 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말한다.
롬10:14-15에 보면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사도바울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였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열심을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가 전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당면하게 되는데, 여기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인 전도는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능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1) 조직과 전략과정
초기 한국교회에서 전도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누구나 전도할 수 있다는 의식이 강조 되었는데, 특히 평신도에게 개인전도를 의무화하고 어린교회학교 학생에게도 인도상을 주어 전도를 정려했으며 가이사랴에 주둔했던 이달리야대의 백부장되는 [고넬료]의 가정처럼 인가귀도 되어 온 가정이 모두 다 믿으면 모범 가정으로 추대를 받기까지 하였다.
오늘의 교회가 전도를 위한 새 구조로 조직 되어야 하는데, 인구가 증가하고 세속시대로 돌입하는 이 시대에서 교회를 하나의 복음 전도팀으로 생각한다면 목회자가 팀의 코치가 되고 평신도는 그 구성 멤버가 되어야 한다.
전도에 가장 위험한 사상은 전도의 책임을 목회자 스스로 전담하려는 생각과 평신도들은 전도는 목회자에게 전담시켜야 된다는 생각이다.
목회자는 평신도의 전도를 대행해 주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로 하여금 일선 맴버가 되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전도자가 되어야 하며, 평신도들이 전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의무는 목회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실천해야 한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신앙적인 가족안에서 서로 다른 것 같으나 복음전파의 사명에서는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평신도는 분산된 교회로서 적도의 전위대요, 목회자는 지휘관이다.
사회의 모든 기능이 다원화 되듯 교회조직도 다원화 목회가 되어야 한다.
병사가 전선에서 승리하려면 전략이 잘 세워져야 하듯이, 전도 전략을 위해 장기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평신도의 특수 전도훈련, 남․여전도(선교)회의 재정비, 부흥회의 재검토와 농촌어전도, 산업전도, 군대전도, 경찰전도, 학원전도, 특수전도를 위해 조직, 인원, 장비, 재정에 대한 장기계획이 요구된다.
전도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도자 양성이 급선무인데, 특히 도시 교회나 큰교회 목회자 양성도 급하지만 개척전도, 산업전도, 학원전도 등 특수전도에 투입될 전도자 양성을 해야 한다.
2) 준비와 탐색과정
오랫동안 땅위에 엎드려 있던 새가 한번 날으면 높이 날으듯이, 사람도 힘을 기르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한번 일어서면 힘차게 활약하게 된다.
먼저 핀 꽃은 먼저 지는 법이다.
남보다 먼저 공을 세우려고 조급히 서둘것이 아니라 생명이 긴 일은 그 만큼 준비도 길어야 한다.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해보면 어려운 법이다. 못할 것 같은 일도 시작해 놓으면 넘어가듯, 쉽다고 얕볼 것이 아니고, 어렵다고 팔장을 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쉬운일도 신중히 하고 어려운 일도 겁내지 말고 해보아야 성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도를 위한 준비작업으로서 전도자의 양성, 훈련 그리고 파송과 함께 전도를 위한 기도의 준비, 필요한 물질과 자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준비는 교회가 항상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으로서 전도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준비과정을 인적준비, 물적준비, 영적준비로 세분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영적 준비이며 이것은 각자의 사명과 여건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문제인 것이다.
준비의 과정에서 탐색의 과정으로 성장하기 위해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집약시킬 수 있다.
첫째로, 지역적 탐색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전도할 지역을 말하는데 어느 일정한 지역을 선택하여 어느 일정한 지역을 전도할 장소로 결정하였으면 그곳의 [문화적 여건, 인구의 분포도, 경제적 여건, 교육적 환경]등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며 [어린이들과 장년들의 수, 성별, 학교와 직업, 교우와 찬우 관계] 등에 대하여 치밀한 사전 탐색이 있어야 한다.
도시의 경우에는 지역 범위를 좁게하고, 유동이 심하지 않는 농어촌지역은 그 범위를 넓혀도 좋을 것이다.
둘째로, 대상자 탐색을 들 수 있다.
전도의 대상자는 선정하고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며 사람의 가족관계, 교우관계 등 주의 환경을 잘 알아본 다음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전도 방안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접촉과 인도과정
전도의 대상 장소와 대상자를 선정하였으면 그 대상에게 접근하여야 되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언어를 통해 접촉하는 방법이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마치 솜옷 같이 따스하고 사람을 해롭게 하는 말은 가시덤불 같이 아프게 찌른다'는 말처럼, 말한마디 아니 한마디의 말이라도 그 중하기가 천금에 비길 수가 있다. 소홀히 하지 말것이 말이다.
말이란 것은 온화하고 분명할 수록 사람을 감동시키기 쉬우므로 과격하고 간사한 말을 되도록이면 피해야 한다.
전도 세미나와 개인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언어이므로 자신의 기본적인 신념과 강한 호소력을 동반하여야 한다.
둘째로, 문서를 통해 접촉하는 방법이다.
문서운동은 특별히 사색적 인물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큰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대상자에게 전도지나 책 혹은 신문, 잡지등을 발송하여 문서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문서를 통하여 깨달은 자들이 한두사람이 아님을 보게 되는데, 웨슬레는 테일러(Taylor)의 [거룩한 생활과 죽음]이란 책을 읽고 곧 결심을 하였고, 허드슨 테일러는 자기 아버지의 서재에서 작은 책자가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곧 '다 이루었다'는 문구를 읽고서 중국 선교사로 갈 결심을 했으며,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백스터(Baxter)는 [상한 갈대]란 책을 읽고 하나님께로 인도되었다고 한다.
불란서의 한 병원에 비치된 기독교 문서는 유명한 종교개혁자 콜지니(Coligny)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였고, 그 뒤에 자유를 얻게 하는데 공로가 큰 오랜지(Orange)공의 부인을 주님께로 인도 하였다고한다.
이렇게 기독교 문서가 큰 역할을 한것을 볼때, 문서를 통한선교(전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셋째로, 각종 기재를 통해 접촉하는 방법이다.
각종 시청각 재로, 슬라이드, 영화, TV, 라디오등 각종 기재를 통해 접촉하는 방법은 접촉의 대상이 넓고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개인적인 호소력이 약하다.
그러므로 접촉의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대상자의 기본적인 자세에 호소하며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기초적인 문제는 대상자의 공동 관심사에 집약시키는 방안에 필요한데,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그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영화나 슬라이드 등을 통해 집약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앞으로 이끌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당으로 나올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좀더 구체적인 전도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전도는 친절한 태도로 해야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첫인상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혀줌으로써 상대방과의 대화의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이때 평범하고 정다운 이야기로부터 친절하게 그리스도의 사실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져야 하며, 상대방의 필요에 참된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고 신중하게 들어준다는 것은 완전한 호감을 불러 일으켜 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
이것은 간단한 문답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추운날에 교회당 근처에서 떨고 있는 사람을 만나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이 사람은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이 분을 도와주기 위해 데려왔지만 그 부인은 성가시니까 이분을 친절하게 대하지 아니하고 불친절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데려온 사람은 어쩐 영문인지 어른이었지만 점점 줄어들고 쪼그라져서 적어졌다.
이 광경을 본 주인은 민망해서 부인에게 잘 말하여 다시 친절히 그를 대하게 하고 좋은 말을 하게 하며 좋은 음식을 대접하게 하니 어제까지 적어지지만 하던 사람이 점점 커지고 다시 아름다워졌다.
그런데 그분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천사였다는 것이다.
천사는 항상 친절하고 사랑이 충만한 하늘에서 지내던 분이어서 불친절하고 냉대한 가운데서는 줄어들다가 다시 친절과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 있게 될때 다시금 크고 아름다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것은 치절이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ㅊ절한 태도이다.
둘째, 전도는 간단하고 요령있게 해야 한다.
먼저 구원의 길을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골자만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방법과 성경귀절을 알아두어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여 하신일이 무엇인지 말하는 동시에 십자가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살아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믿지 않는 자를 전도하는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죄의 실제와 십자가상의 사역과 구원의 필요성을 가장 자세하고 정확하게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증거하는 말씀이지 변론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변론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없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자기의 의견만 말하기를 고집한다면 그런 대화는 틀림없이 변론이 되고 말것이다.
왜냐하면 의견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간단하게 증거하며 요령있게 전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전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사랑과 친절로써 구원의 길을 증거하더라도 때로는 냉정하게 거절을 당할때가 아니다.
그러나 이때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더욱더 사랑으로 참고 견디면서 십자가의 길을 몸소 태도로 증거해야 한다.
꾸준히 기도하고 성령께 의뢰하며 전하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많은 열매를 거두어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참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전도해야 한다.
4. 전도의 방해요서
현대인의 생활이 점점 자기 중심적이 되어 이웃과의 대화가 적어져 가고 있다.
사람이란 사회적 동물이지만 현대인의생활이 점점 고독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대화가 요구되는 때가 없다.
전도는 일종의 대화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구조로 받아들이고 교회안에서 성도가 교제하며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대화하는 것이 전도이다.
특히 삶에 있어서 절망과 방황가운데 빠져있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믿게 하는 대화에는 많은 방해요소가 있다.
교회가 전하는 복음과 현대인의 마음 사이에도 간격이 있어서 전도하기가 어렵다.
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진리를 전파하는 일과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다.
교회에 전도열이 식어서 전도란 하나의 구호뿐이요,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열의도 없고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나 그 영광을 위한 봉사심이 약하다.
전도열이 식어가는 원인은 신앙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 구원이 아니라 사회구원을 강조한 나머지 전도보다 사회개량, 사회 복지를 위해 더 열심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유일의 길이요, 삶의 진리라는 복음에 대한 확신을 잃어 버리고 세속적인 학문이나 사상에 더 권위를 두는 경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교회가 싸우고 피를 흘려 쟁취한 근본적인 교리마져 희생시켜 세속적인 학문과 타협하므로 전도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과학이나 권력이라고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절대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곳에 전도열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의 권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예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재림, 구원등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서 전도열을 찾을 수는 없다. 기독교의 진리와 삶을 상대화 하려는 생각때문에 전도가 큰 방해를 받고 있다.
1) 교회의 방향 착오에 원인이 있다.
교회의 사업상 순위로 볼때 전도가 최상위요, 먼저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적은 비용이거나 명목상의 항목으로 유지되는 실정이다.
세계화의 물결속에 인류사회를 복음화(천국화)하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전도보다 교육과 사회사업이 앞장서고 국제적인 사업에 더 관심이 많게 되는 것이다.
복음전도가 교회 사명이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전도를 교회 사업상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방향착오가 전도의 방해 오소이다.
2) 교회의 분열과 난립에 원인이 있다.
사소한 감정과 의견 대립으로 교회가 분쟁하거나 난립되어 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다.
교회 난립의 원인에는 사소한 문제로 발단되기도 하지만 외부세력에 의한 영향도 많다.
교회가 교회답게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로 성장할때 분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전도에는 윤리 도덕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인도하거나 잃은 양을 찾는 것은 좋으나 다른 사람의 양을 데려오거나 유인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절도요, 강도이다.
하루빨리 교회가 성장 하기를 바라는 것은 좋으나 반드시 교회성장은 참된 전도로써 이룩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교회에서 옮겨온 교인으로는 참된 성장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다른 교회에서는 옮겨간 교인만큼 줄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교회수는 증가하지만 교인의 수는 증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물며 교인쟁탈, 교인유인 작전은 전도에 큰 방해가 된다.
3) 이웃의 안면 방해에 원인이 있다.
교회가 이웃에게 두통꺼리로 인식되는 것이 바로 전도의 방해이다.
새벽마다 아침잠을 설치게 하는 교회 차인벨(종)소리와 박수를 쳐가며 힘차게 부르는 찬송소리와 주여! 삼창을 외쳐가며 울부짖는 통성기도 소리가 이웃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웃에게 도움과 유익이 되어야 전도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자재하는 생활을 배워 나가기 바란다.
5. 전도의 끝맺음
전도하여 교회로 나오게 한자들을 위해 교회의 특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크게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을 통한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을 통한 훈련]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신앙인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게하고 다시 전도자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 성경을 통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다.
이 성경을 통하여 구세주의 복된 말씀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인생의 나그네 길에 있어서의 안내서이며, 천국에의 길을 보여주는 유일한 교과서]라고까지 무디는 표현하였다.
우리는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성경을 통하여 자기의 위치를 알게 하며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알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회에서는 새로나온 분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을 세우고 이에 따라 교육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새로 등록한 사람을 위해 기독교의 기초적인 진리를 짧은 기간안에 가르치게 할 수 있는 교육방법이 시도되어야 한다.
바른 것을 알고 바른 것을 행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진 인간이 되도록 하여 주지 않으면 참된 교육이 되지 않으므로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 든지 성경말씀을 강론하라'(신6:7)는 말씀처럼, 늘 성경말씀을 토대로 교육하여야 한다.
2) 생활을 통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부족과 신앙에의 헌신을 결단하며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아무리 전도를 하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고 해도 교육과 훈련을 통해 보존하지 않으면 한번 왔다가 떠나는 손님을 만들뿐이다.
그러므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신앙인을 형성하면 그로 하여금 나아가서 다시 전도하는 자리까지 성장시켜야 하며,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어 생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함께 생각할 문제
1.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2. 우리는 무엇때문에 전도해야 하나?
3.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무엇인가?
4.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부탁하신 말씀은?
5. 전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6.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7. 예수님의 전도의 특색은 무엇인가?
8. 구원에 대하여 설명하라.
9. 교회에 대하여 설명하라.
10. 멕가브란의 전도목표는 무엇인가?
11. 선교의 전과정을 이끄는 분은 누구인가?
12. 기독교의 신학적 기초를 어디에 두는가?
13. 전도에 가장 위험한 사상은 무엇인가?
14. 전도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15. 전도의 준비과정에 대하여 설명하라.
16. 전도의 2가지 탐색 과정은 무엇인가?
17. 전도의 접근방법에 대하여 설명하라.
18. 각종 기재를 사용하면 어떤 약점이 있나?
19. 전도열이 식어가는 원인은 무엇때문인가?
20. 전도에 장애요소가 되는 것은?
21. 교회의 난립원인이 되는 것은?
22. 교회분열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
23. 교회수는 증가하나 교인수는 감소되는 요인은?
24. 교회가 이웃의 방해 요소가 되는 요인은?
25. 전도자로 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26. 새로 등록한 자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27. 참된 교육이 이루워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28. 이스라엘 민족은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29. 신앙생활의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30. 생산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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