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신승호!!

순교자 가정 이야기

백미란목사 2011. 7. 6. 09:19

몽골에서 단체사진입니다 왼쪽 맨뒷줄 끝 모자쓰고 어깨에 겉옷걸친 승호입니다.

순교하기 바로전의 사역모습입니다.

중등부교사시절 모습입니다. 승호후배가 미니홈피에올려놨던사진 옮겨와 올립니다.

저는 비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8세 때 어머니의 신앙 개종으로 신앙생활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한 탓에 개념 없이 불신자 남편을 만나 결혼 하였고, 어려운 가정생활에 힘이 부쳤습니다.

불신자남편이 교회에 함께 나가게 되어 직분도 받고 나름 어려움 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사업을 해보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하게 되었고 경험 없는 우리는 빛만 억소리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격고 나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온가족이 새벽기도 다니며 열심히 신앙으로 일어서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다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을 영육간에 강건함으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서 감사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령충만으로 살아갈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응어리 마음의상처를 풀게하시려고 끊임없이 재촉하시는 것이 하나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학문인 신학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신학공부 하도록 하셔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신학1학년마치고 방학이 되었을 때, 개척한지 3년된 작은교회에 신학생 신분으로 전도사 사역도 나가게 되어 열심히 봉사하며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최선을 다해 열정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던 2000년 따뜻한 봄 어느날 아들은 말했습니다. 몽골로 단기선교를 간다고...그당시 아들은 ywam 예수전도단 청소년 발렌티어로 섬기고 있었고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는 중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선교비는 어떻게 마련해서 가느냐며 가지말라 했더니 아들은 말하더군요 선교를 돈으로가냐고 엄마는 왜 돈걱정부터 하시냐고..

“하나님께서 가라하면 순종해야죠!” 라며 단호하게 말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열심히 기도로 모임가지며 준비하여 여름이되어 2000년8월2일 몽골가기위해 출국하였습니다.

8/2~8/16 두주간의 사역으로 준비하여 떠났던 아들은 8월7일 몽골에서 사역중에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그 소식은 8월8일 듣게 되었고 실종이라면 길을 잃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놀랄까봐 그렇게 전해온 소식이었고 이미 신승호 김광진 두청년이 물에빠져 가라앉아 실종된 뒤에 한국으로 전해온 소식이었습니다.

하늘이 노랗다 못해 청천벽력 같고 온통 머리와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주님만 불러대며 소리쳐 찾았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무릎끓었습니다.

주님~주님~ 오~주님 ~그러나 제마음에 승호는 없었습니다. 가버렸습니다.

아~ 어찌 할바를~ 몸을 가눌수도 없었습니다.

8월9일 분주히 여권 만들기 위해 신청하며 사역하던 교회의 목사님 인솔에 끌려 수속을 밟아놓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승호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 있단말인가?...

8월10일 아침일찍 공항에 도착해보니 광진이 어머니도 남동생과함께 오셨습니다.

그런데 광진이는 아빠없이 엄마와 단둘이살다가 몽골선교갔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면 어머니 쓰러져서 안되니까 처음 전해온 소식대로 실종 이라고 말하자며 저에게 일러주더군요.

비행기에 탑승하여 식사시간 되니 기내식이 나왔는데 저는 하나도 못 먹겠는데 사실을 모르는 광진어머니는 맛있게 식사하시며 승호엄마는 왜 안드세요? 하며 권하시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고 주님만 찾았습니다.

몽골에서 8월14일 두 아이의 시신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8월15일 장례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큰 아들 승호는 우리가정의 작은예수로, 몽골의밀알로 귀한열매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2011년 7월입니다.

그동안의 아픔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식구들 모두가 받은 상처로 인하여 서로에게 상처만주는 그런 불상사도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작은아들에게는 엄마로서 상처만 주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아팠습니다.

형을잃은 아픔도 클텐데 .. 아들잃은 슬픔만을 앞세웠던거죠.

진실로 작은아들 신승관(26세)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엄마가 너의마음을 헤아려주지못해서 정말로 미안했다고 진정으로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남편은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너무 힘들어했고 더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소리치며 울부짖습니다.

넌! 넌! 좋겠다. 예수가 있어서 난! 난! 뭐냐? 돈버는 기계냐? 고 소리치며 원망합니다.

너무도 불쌍하고 가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살리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섬기는 교회에서 양육훈련되는 “알파코스”에 참여하게 되었고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란노 “아버지학교”에 참여하여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거듭남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남편은 권사입니다. 열심히 봉사하며 충성하며 하나님의자녀로 살아갑니다.

저는 주신사명 감당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역되길 원하며 열심히 복음을위해 살아갑니다.

이제 하나뿐인 아들이지만 주님께서 인도하셔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트럼펫으로 전문음악가 되어 이땅의 나팔수로 열심히살아가길 원합니다.

영원한나라 하늘나라 가는 그날까지 열심히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뜻을위해 순종하며 우리 세 식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12년의 세월을 정말 훈련으로 알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목회상담전문과정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요즘은 심방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문화가 바뀐 때문입니다.

그런 성도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해주며 다가갈 수 있는 관계가필요합니다.

그래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공부하는가운데 부사역하던 사역을 내려놓게되었습니다.

사역지를 알아보려했지만 마음대로 되질않았습니다.그래서 기도하며 하나님의음성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정에 귀한사역이있음을 알게하셨습니다.그것은 교회를 세우는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대에 교회세우길원하셨습니다.

개척이 너무어려운 이시대에 이게웬말입니까?

저는 망설이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번더 부사역하게하시고 60살되면 그때 개척할께요 라고그러나 저의 부사역은 이루어지지않고 ....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물흐르듯 주님께서 인도하심따라 순종하려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간절히바라며 감히 저의사정을 알려드립니다.

사랑하고축복합니다 ^*^

백미란전도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