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끝까지 붙들고 사용하셔서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불순종한 요나
요나는 어느 날 니느웨 성에 가서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이 싫었던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니느웨와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셨고 배는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게 되자 제비를 뽑게 되었고 요나가 뽑히자 사람들은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 한 사람을 위해서 배와 많은 사람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폭풍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비록 반항하고 불순종한 요나였지만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일이 중요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순종 잘하는 다른 사람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도 중요하지만 요나 한 사람을 더 중히 여기셨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폭풍을 보내셔서 그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비로소 이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에 원망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고난 한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다시 육지에 토해 내도록 하셨습니다(욘 2:1∼10).
우리도 때로는 고통의 폭풍 속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불순종의 결과이든 뜻을 알 수 없는 고난이든 이 모두 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고통 가운데 좌절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며 능력이 많으신 주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2. 두 번째 부르심
야훼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욘 3:2)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은 처음에 주셨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명을 저버렸던 요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를 용서하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사명으로 요나의 명예와 예언자로서 권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용서하시고 다시 찾아오실 때 처음보다 더 큰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며 부인했던 베드로가 회개하자 주님은 용서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중요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요 21:15∼17).
또한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을 날마다 문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돌아오자 용서만 해 준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입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탕자에게 아들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낭패와 좌절과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해 주시고 멋지게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 주님을 우리도 찾고 부르짖어서 만나야 합니다. 그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3.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대답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자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욘 3:5).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심판하려는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욘 3:10). 요나는 적대국인 앗수르가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 심히 마음이 불편하여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라고 화를 냈습니다.
사실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죽음에 내몰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요나나 니느웨 사람들이나 똑같이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니느웨 사람들도 회개하면 역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태복음의 용서하지 못하는 종(마 18:21 이하)과 같습니다. 요나는 자기 민족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화내시지 않고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 4:4)라고 조용히 타이르십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박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그늘에서 낮의 뜨거운 티양을 피할 수 있게 되어 기뻐했지만 이내 박넝쿨이 시들자 더위에 시달린 끝에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욘 4:9), “네가…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0∼11)라고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 세상의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을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요나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같이 화를 내고 죽여 달라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그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기까지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이끌어 주셨습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질문에 침묵하고 있는 요나의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아마도 욥이 하나님을 알았을 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넓은 사랑과 한없는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자랄 때까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명령이나 경고나 권면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불순종해도 오래 참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 주님을 잊지 말고 소망을 잃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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