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선물인가 예수가 선물인가 브라이언 맥클라렌,
인터뷰 임성빈 "나는 기독교를 제시하지 않고도 예수를 전하고 싶습니다"
‘넥스트 웨이브 컨벤션’의 주강사로 한국을 처음 찾은 브라이언 맥클라렌 목사를 만나 최근 기독교가 맞닥뜨린 숙제와 이를 슬기롭게 풀어갈 미래 교회의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그가 꺼내 놓은 카드는 의미심장하고 숨 막히는 제안이었지만 그의 말은 시종일관 차분했으며 들뜨지 않았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임성빈 교수가 진행한 인터뷰는 맥클라렌 목사가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인 5월 13일 오후, 그가 묵었던 호텔에서 이뤄졌다.
이야기는 맥클라렌 목사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작년에 결혼한 아들의 아내가 한국인이라서 첫 방한임에도 낯설지 않다는 인사로 시작되었다.
정리 박동욱 기자 | 우리말 옮김 조성주, 이지혜 |
임성빈:복음 이외에도 이야기할 거리는 많다 임성빈: 2005년 <타임>(TIME)지가 목사님을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 중 한 분으로 선정하기도 했고 이외에도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주목합니다.
기독교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시대에 교회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목사님 같은 분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당신의 사역 도구로 삼으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맥클라렌: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제가 그런 부분에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타임>지 기사를 보면, 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저를 두고 보수주의와 극단주의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아주 흥미롭게도, 진보적인 복음주의자들과 진보적인 가톨릭 신자, 그리고 탈자유주의적 주류 개신교인들이 연합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만난다면, 서로 대화할 이유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 내에 있는 반대편 극단의 사람들보다 서로 공통점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보수주의 복음주의자들과 보수주의 가톨릭 신자, 제도권 주류 사람들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임성빈:저도 올해가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컬 운동이 통합하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목사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연합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까?
맥클라렌: Everything Must Change(포이에마 역간 예정)라는 책에서 저는 네 가지 위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나머지 세 가지를 제외하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이 네 가지는 항상 같이 가는 것이니까요.
첫째가 지구를 돌보는 문제입니다.
둘째는 가난의 문제입니다. 환경과 가난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입니다.
셋째는 평화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슈는 우리가 이 세 가지 문제에 관여하도록 도와주는 영성의 문제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이 네 가지 문제를 다룰 때 복음주의적이면서도 에큐메니컬할 수 있다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무언가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라는 선물을 누구와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 오로지 그들을 회심시키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그 외에도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아주 많지요.
임성빈:우리가 이런 면에서, 물론 열린 태도가 전제되어야겠지만,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는 합니다만, 영적 토대 혹은 헌신의 차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맥클라렌: 글쎄요. 교수님 말씀을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볼까 합니다.
9.11 테러 이후, 저희 집 근처에 사는 무슬림 신자와 친해졌는데, 하루는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목사님의 종교에 따르면, 목사님이 제 이웃으로서 제게 하셔야 할 의무가 뭔가요?” 저는 그의 질문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제를 가지고 우리 지역의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은 이런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신네 전통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이웃인 내게 지고 있는 당신의 의무가 무엇인지 찾아보라. 그것을 알아내서 내게 말해 주면, 나도 당신에 대한 나의 의무가 무엇인지 말해 주겠다.
이런 상호작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한번 지켜보자.” 우리의 전통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연합할 이유를 찾는 거죠.
그 무슬림과의 대화는 제게 아주 유익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친구로서 그런 경험을 한 것이지요. 복음을 꼭 서양 문화에만 담아서 전해야 할까요
임성빈: 기본적으로 목사님의 비전에 동의합니다만, ‘보수’적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교인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도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맥클라렌: 아주 긍정적인 반응과, 아주 부정적인 반응이 있지요. 저는 그런 부정적인 반응들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제가 성경 이야기에 대해 조금 색다른 이해를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그 색다른 이해라는 것이 뭘까요? 제 생각에 그 사람들은 토대를 잃어버릴까 봐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염려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염두에 두신 회중 혹은 대상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맥클라렌: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우리가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의 전환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포스트모던 사회로 전환하면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질문들이 발생합니다.
기독교 진영 내의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나 이런 새로운 질문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주 다른 종류의 질문들이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도 그 때문에 고생이 많았고요. 1990년대 초반에 목회를 하면서, 교회에서 성장한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생각하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임성빈: 그것을 철학적인 틀(philosophical framework)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저는 그 사람들의 틀이 달랐다고 생각합니다만.
맥클라렌: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들은 저보다 더 힘들었지요. 저를 납득시킬 수 없었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제가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다른 종류의 틀에서 살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 사람들의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들이 왜 혼란스러워하는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프리카 신학자 라민 사네(Lamin Sanneh)가 이 점을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기독교 신앙은 번역이 가능하여, 각양각색의 문화권에 얼마든지 녹아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 신앙을 받은 문화는 그 신앙이 다음 문화에 맞게 번역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과거의 저였고, 현재 서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임성빈: 그 문제는 복음과 문화라는 주제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 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특정 문화를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맥클라렌: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이 직면한 큰 도전 중 하나는 그리스-로마 문화를 생각보다 많이 수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스-로마 사고방식에는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거나 배재하거나, 둘 중 하나죠. 하지만 이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오히려 복음은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파송하여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도록 합니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서양 문화는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임성빈: 그것이 바로 21세기 현대 교회의 과제가 아닐까요. 어떻게 하면 다양하고 다원적인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말입니다.
맥클라렌: 이 문제는 어마어마한 선교적 도전을 가져다줍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기독교를 선물로 줄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선물로 줄 것인가?
기독교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을까?” 몇 해 전에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애틀에 위치한 마스힐 대학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 학생 한 명이 저녁 식사 모임의 자유 발언 시간에 앞에 나가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이미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상담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 학교가 상담학이 유명하다기에 유학을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공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문화와 관련을 맺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니투스, 보이티우스 등에 대해(그는 서양 사상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았습니다) 배웠습니다.
하지만 노자의 말씀은 단 한 줄도 읽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학생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몇 주 전에, 여기 미국의 도서관을 찾아 노자의 책을 빌려 밤새도록 탐독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제가 서양 문화를 잘 받아들이도록 훈련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제 자신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임성빈: 그게 바로 문화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깨달아 가는 과정, 자기 영혼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맥클라렌: 그렇죠. 그 학생은 신학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식민주의의 잔재를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는 서양-유럽 문화가 표준이고, 나머지는 비정상이라고 전제합니다. 그럴 때 복음은 서양 종교로 비치게 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양 종교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기독교 신앙을 비서양 종교로 표현하려는 훌륭한 신학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서구 일부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낡은 기독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뿐이라는 태도가 문제다
임성빈: 아까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목사님과 목사님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역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인데, 목사님은 21세기 기독교가 다가가야 할 새로운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듯합니다.
그 사람들은 비서구권의 소위 미전도 종족일 수도 있고, 기독교를 알지만 기독교에 신물 난 서구 사람들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서구 문화가 복음에 남긴 부산물을 제거해 복음을 오해할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 남은 중요한 문제는 어쩌면 문화보다 더 심각한 교리 문제입니다. 목사님은 교리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맥클라렌: 여기서 ‘심층적인 틀’이라는 이슈가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리라는 단어를 근본주의적인 틀로 정의합니다. 마치 벽돌과 담 또는 기어와 기계처럼 잘 들어맞는 일련의 신념을 뜻하죠.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그런 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리를 그렇게 이해합니다.
저 또한 그런 틀에서 성장했고, 오랫동안 그 틀을 배웠기 때문에 잘 압니다.
교리는 이 시스템에 들어맞는 작은 조각들로, 모든 현상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지난 20년 사이, 저는 교리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교리를 일종의 가르침으로 보게 된 거죠. 교리는 곧 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도를 가르친다는 의미의 교리에 헌신한 것이지, 기계의 부품처럼 들어맞는 신념 체계에 헌신한 것이 아닙니다.
임성빈: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교리는 이정표 같은 거라고 했습니다. 교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요.
맥클라렌: 제 생각도 흡사합니다. 그런데 교리 문제에는 또 다른 더 깊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성경적인 내러티브의 문제입니다.
성경이 그리고 있는 큰 이야기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제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저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A New Kind of Christian, 한국 IVP 역간)를 쓰면서 낡은 이해를 해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작업을 지금 하고 있는데, 내년 3월에 미국에서 책으로 출간됩니다. 제가 고른 제목은 아닌데, 아마 「새로운 기독교가 온다」(A New Kind of Christianity)라는 제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업은 제게 큰 도전입니다.
제가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람들은 기독교의 낡은 형태를 변호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저는 거기에 맞서 공격할 의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낡은 기독교를 아무런 문제없이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 사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고, 미국에 사는 한인 1.5세, 2세들 사이에는 더 많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젊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낡은 기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이런 형태의 기독교를 지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그 상자에 끼워 맞추지 못하는 것이죠. 성경만 보아서는 성경의 이야기를 알 수 없었다
임성빈: 목사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정말 놀랐던 점은, 문학을 공부하셨는데도 목사님의 비전은 아주 크고 우주적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목사님의 기본적인 훈련이 문학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인 비전을 제시하셨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어디서 얻으셨나요?
맥클라렌: 재미있는 사실은 제가 그 비전을 성경에서 봤다는 겁니다.
구약 성경에는 우리가 땅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와 연관된 법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그게 바로 생태학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또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슈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 주제는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에도 동일하게 등장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평화”라는 단어를 취해 개인화하여 근대 서양의 사고방식에 끼워 맞춥니다. “평화”라는 단어는 여러분 마음속의 평안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 다른 나라와의 평화, 다른 종교와의 평화를 가리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화평이신 그리스도가 “둘을 하나로 만드신다”는 바울의 말은 또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 정도면 이런 문제들이 성경에 잘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성경에는 그런 내용들이 항상 있었는데, 저는 그걸 어찌어찌 가르쳤으면서도 사실상 제대로 보지는 못했던 거죠.
임성빈: 저는 신학자로서, 목사님의 신학 방법론을 분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성경을 읽으시고, 현실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면서 그 둘 사이의 유기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맥클라렌: 맞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려보면 어떨까요. 저는 교외 지역에서 자란 중산층 백인 미국인입니다.
제가 원하지 않으면 가난을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또 제가 원한다면 폭력을 마주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지요.
제가 생활을 잘 정비한다면 백인들과만 어울려 살 수 있으니, 인종차별 문제로 고민할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여러분을 그런 고립된 세계에서 끄집어내면, 여러분이 도무지 회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더 이상 그런 문제들이 없는 척하며 살 수 없는 거죠. 그런 다음 성경을 보면 그런 문제들이 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그 두 가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거지요. 제가 슬럼이나 난민 캠프, 도심 지역에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성경에 있는 그런 문제들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제가 그런 현실을 목격할 때 성경 때문에 다른 종류의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임성빈: 목사님은 특이하게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시다가 나중에 사역자가 되셨습니다.
문학 교수와 신약 성경 학자는 어찌 보면 비슷한 면도 있어 보입니다. 계획하셨던 일이신지요?
맥클라렌: 아닙니다. 그건 절대로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또는 우연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편하실 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절대로 목사가 되거나 신학 서적을 쓸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게 꿈인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죠.
그런데 제가 대학에 들어간 1970년대 초반, 요즘 사람들이 ‘포스트모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미국 대학교육 과정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영문학과가 시작이었죠. 그래서 1970년대 중반에 저는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포스트모던 철학을 일부 접했습니다.
저는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ffer)와 루이스(C. S. Lewis)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1970년대 후반 대학원 재학 시절에 프랜시스 쉐퍼가 이런 질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의 답변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루이스가 그 점에서는 조금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그런 문제들을 다뤄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사람들을 만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이런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전국을 헤매 다녔습니다.
몇 시간을 운전해서 사람을 찾아가 고작 한 시간 동안 제 질문들을 털어놓고 옵니다.
요 몇 년 사이, 이런 질문들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임성빈: 그중엔 어떤 분들이 있나요?
맥클라렌: 음,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 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rmann),
그리고 낸시 머피(Nancy Murphy), 짐 맥클렌던(Jim McClendon) 등이 있습니다.
임성빈: 철학적 신학자부터 선교학자, 구약학자 등 아주 다양한 분들을 만나셨네요. 이제 아쉽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목사님이 해온 고민들을 지금 현재 안고 씨름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목사님이 다른 이들을 찾아 나선 것처럼 이들이 목사님을 찾아온다면 어떤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더 이상 기독교가 환영받지 않는 상황에서 복음을 이야기하고 복음의 영향력을 드러내야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목사님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주실 수 있을지요?
맥클라렌: 교수님의 질문이 제가 인식하는 한국의 현 상황을 잘 묘사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전 세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죠. 한국 교회의 영향력도 대단합니다.
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미국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이 저지른 실수 중 한 가지는, 복음과 종교적인 문화를 동일시하며 전파한 것인데, 그것만은 꼭 피하시기 바랍니다.
임성빈: 제국주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맥클라렌: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나라가 저지른 크나큰 실수이기 때문에 저는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미국은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질렀지만, 여러분은 저희 실수에서 교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교회가 핵심이라는 사상, 다시 말해서 대형 교회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전파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즉 하나님 나라의 대행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저는 이 문제가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한 신학적 논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위해 선교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선교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인가?” 제게는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에게는 어떤가요?
출처: 크리스채너티투데이 코리아(www.christianitytoday.co.kr)
맥클라렌목사(BRIAN D. MCLAREN)
이머징 교회 운동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강연가이며 목회자로, 기독교 지도자들과 사상가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네트워킹 운동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1956년생으로 메릴랜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고등교육 기관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86년에 학계를 떠나 워싱턴 지역 볼티모어 시에 위치한 혁신적인 초교파 교회 시더릿지 커뮤니티 교회(CEDAR RIDGE COMMUNITY CHURCH)의 개척 목사가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 교회 개척자와 목회자들 사이에서 활발한 네트워킹과 멘토링을 해 오면서, 여러 교회의 설립에 관여했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캠퍼스 선교단체나 교회 수련회, 신학교나 컨퍼런스에 강사로 자주 초청받는다.
그의 강연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성경 연구, 전도, 변증, 리더십, 지구촌 선교, 교회 성장, 교회 개척, 미술과 음악, 목회자의 생존과 탈진, 종교 간 대화, 생태학, 사회 정의 등 광범위한 주제를 포괄한다.
그의 저서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국내에는 「저 건너편의 교회」(낮은울타리), 「믿음찾기」(미션월드 라이브러리), 「나는 준비된 전도자」(미션월드라이브러리), 「세상을 정복하는 기독교 문화」(이레서원, 공저)가 출간되었고, FINDING OUR WAY AGAIN, EVERYTHING MUST CHANGE, A GENEROUS ORTHODOXY, THE SECRET MESSAGE OF JESUS 등이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본서와 함께 3부작으로 기획된 THE STORY WE FIND OURSELVES IN, THE LAST WORD AND THE WORD AFTER THAT 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선교적 기독교 지도자들 사이의 우정을 통해 창조적인 사역을 도모하는 단체 WWW.EMERGENTVILLAGE.COM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소저너스”(SOJOURNERS)의 이사와 레드 레터 크리스천(RED LETTER CHRISTIANS)의 발기인이기도 하다.
또한 오프더맵(OFF-THE-MAP.ORG), 인터내셔널 팀스(WWW.ITEAMS.ORG), 마스힐 대학원(MHGS.EDU) 등에서 섬긴 바 있다.
언론 매체도 그의 활동에 큰 관심을 보여,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 “종교와 윤리 뉴스위클리”(RELIGION AND ETHICS NEWSWEEKLY),
“나이트라인”(NIGHTLINE), “CBS 이브닝 뉴스” 등 라디오/텔레비전 프로그램과, “타임”, “워싱턴 포스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크리스천 센추리”를 비롯한 수많은 인쇄 매체가 그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아내 그레이스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었으며 세계 곳곳을 자주 여행하는 그는, 개인적으로 생태 문제, 낚시, 하이킹, 음악, 문학 등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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