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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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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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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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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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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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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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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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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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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f some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tunic, let him have your cloak as w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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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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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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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some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him two mi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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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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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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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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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너무 높고 험해서 감히 오를 엄두도 못 내는 고봉 앞에 선 심정을 가지게 됩니다. 이만하면 꽤 성숙했다고 은근히 자부심을 갖다가도 이 말씀을 대하게 되면 여지없이 납작하게 됩니다.
사실 이 본문만큼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실천 불가능한 이상론으로 보기도 하고 단순히 도덕 지침서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톨스토이처럼 절대평화주의나 완전 무저항주의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악에 대해서 항의 하셨습니다 (요 18:22,23)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우리의 지각이 미처 닿지 못한 좀더 심오한 정신이 담겨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본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분명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하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국가나 사회와의 관계에서 가 아닌 대인관계에 적용될 것을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예수님은 3가지 예를 들면서 악에 대한 신자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구약의 한 계명으로 조명 되었을 때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38절/출 21:24). 겉으로는 매우 잔인하게 보이는 이 계명을 곰곰이 묵상해 보면 이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번쩍이는 동시에 그의 자비하심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① 악을 사전에 예방하여 선한 사람들을 악인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신 19:20), ② 피해자가 보복행위를 가혹하게 하지 못하게 해서 죄를 범한 악인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③ 사적으로 보복하는 일을 금하고 재판장 앞에서 공적으로 시행하게 함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잔혹행위를 하는 악을 막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을 나타내는 법을 그 당시 랍비들은 악용하여 사적으로 보복할 수 있는 근거로써 악용하는 사례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법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려 재 해석해 주셨습니다. 3가지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시는데 전체의 내용 속에 흐르는 정신을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복하느니 차라리 당하라!" "보복하느니 오히려 자비를 베풀라!" 1.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때 유대 풍습에서 뺨을 때린다는 것은 인격을 모욕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손등으로 치는 것은 두 배로 모욕 당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른뺨을 맞았다는 것은 때린 사람이 왼손을 사용하지 않은 이상 오른 손등으로 때린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왼편 뺨을 돌려 댐은 온유와 관용의 덕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서 싸우셨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악인을 악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해친 사람에게 원한을 품거나 보복을 일체하지 않고 오히려 온유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맡겼습니다
2.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 당할 때 유대 사람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갈아입을 속옷 두벌과 겉옷 한 벌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겉옷은 낮에는 몸을 가리는 외투요 밤에는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이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속옷을 빼앗긴 상태에서 겉옷까지 내어놓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권리마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출 22:26). 예수님은 작은 권리를 잃지 않으려고 난폭한 짐승이 되기 보다는 전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앗아가는 사람에 대해 원한의 감정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보복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3. 자유를 억압당할 때 구레네 시몬이 당했던 것처럼 유대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군인들에게 불려가 그들의 짐을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자기 갈 길을 포기하고 5리든 10리든 억울하게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해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유를 구속하는 자에게 여전히 원한을 품거나 보복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이 진리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예수 안에서 거듭난 자, 예수 안에서 옛 자아가 완전히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기대대로 살 수 있습니다(48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보다 원한과 증오의 복수심으로 날카로워진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어떠한 자세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대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같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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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대인관계에 있어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루 하루가 되게 하소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