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장영희 교수님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선일보를 통해서였습니다.
'문학의 숲, 고정의 바다'라는 문학 칼럼이었는데 다른 건 안 읽어도 꼭 장영희교수님의 칼럼은 빼놓지 않고 읽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녀의 글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한 문체로 치장하지도 않았고 눈에 쏙 들어올만큼 멋진 글들로 가득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녀의 글은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가식적이지 않고 자신을 치장하지도 않고 잘난 척 하지도 않고 교양있는 척 지적인 척 하지 않고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라우'하면서 자신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었지요. 그녀의 글은 나에게는 그랬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문학칼럼 연재를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둔다고 할 때 참으로 섭섭하고 또 섭섭했었어요. 그 때는 장영희교수님이 글을 그만쓰려고 건강을 핑계로 내세운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녀는 그 칼럼을 연재하는 중에도 암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내색없이 늘 밝게 웃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그녀의 글은 그랬었어요.
그녀의 글은 늘 밝고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아픔을 알지 못했습니다.
장영희 교수님은 생후 1년 만에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은 1급 장애인입니다. 영문학자였던 부친(장왕록 박사)의 뒤를 이어 서강대 영문학과를 거쳐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따서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님이 되셨지요.
장영희 교수님은 펄벅 등 미국 현대작가의 소설을 유려한 우리말로 옮기고,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영역하기도 했답니다.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을 통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담은 순수문학의 감동을 일깨워주면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요즘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04년 유방암과 척추암 선고를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던 장영희교수님은 2005년 봄 다시 서강대 강단으로 돌아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지만 끝내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9년 5월9일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서강대학교는 고 장영희 교수님의 유족들이 고인의 저작물 인세와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기금을 학교에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구체적인 금액과 사용처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구요. 유족 측은 생전 신부 양성에 관심을 보인 장영희 교수님의 뜻을 살려 예수회와 학교 측에 나눠 기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영희교수님의 별세소식은 웬지 소중한 조각하낙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005년 10월에 읽었던 그녀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다시 꺼내서 읽고 있습니다.
그녀를 한 번 도 만나지 못했고 이제는 다시 만날 기회도 없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힘들었을 삶을 이리도 담담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다듬는 그녀의 마인드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지난 주말교보문고에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샀습니다. 책을 바라보고 있는데 참 슬퍼집니다.
장영희교수님같은 분이 세상에 많았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그녀가 정말로 따뜻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분이란 걸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건강한 두 다리로 사뿐사뿐 걸어다니시면서 슬픔에 가득찬 영혼들에게 행복한 미소 가득 보내주세요
장영희교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씨앗을 뿌리셨는지 아실까요?